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어도어 카진스키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[[미시간 대학교]] 철학 교수인 데이비드 스커비나(David Skrbina)는 [[노자]], [[플라톤]], [[장 자크 루소]], 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새뮤얼_버틀러_(소설가)|사무엘 버틀러]][* 영국 출신의 작가로 1863년에 "기계 속의 다윈(Darwin among the machines)"을 발표했다. 이 에세이에서 기술-산업사회가 모든 인류를 노예로 만들기 전에 기술-산업사회를 끝장낼 반기술 혁명을 일으킬 것을 주장했다.][* 이 사람이 만든 [[에레혼]]은 이상향의 일종으로 사전에도 남았으며, [[버틀레리안 지하드]]의 버틀러의 모델도 되었다.] [[헨리 데이비드 소로]], [[조지 오웰]], 그리고 [[자크 엘륄]][* 카진스키 스스로가 자신이 엘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.]과 같은 앞선 세대의 철학자들이 이미 카진스키에 앞서 비슷한 주장을 한 바가 있음을 지적했다. 또한 카진스키 외에도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여럿 있다는 사실은 카진스키의 주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고 말했다. 그는 카진스키의 사상과 관련한 몇 가지 에세이를 발표했다. 그 중 하나는 '우리 시대를 위한 혁명가([[https://staticcast.tistory.com/10|한글번역]])'이다. 또한 2000년대 초반에 카진스키와 200통 가량의 편지를 통해 기술 문명의 미래에 대해 논했으며, 이를 엮어 '기술의 노예([[https://books.google.co.kr/books/about/Technological_Slavery.html?id=xuxCvAEACAAJ&source=kp_book_description&redir_esc=y|Technological Slavery]])'를 카진스키와 함께 공동출판하였다. 잡지 The Atlantic에서 앨스톤 체이스(Alston Chase)는 "[[산업사회와 그 미래]]"에 대해 1995년도의 많은 지식인들이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. 그리고 체이스 자신은 이 글이 "천재도 미치광이도 아닌 사람의 글"이라고 주장했다. 카진스키가 가진 기술 문명의 방향에 대한 비관주의와 현대 세계에 대한 거부는 여느 미국 고등 교육 계층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는 것이다.[* 데이비드 스커비나 교수는 이런 류의 평가들이 [[새로움에 호소하는 오류와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|새로움에 호소하는 오류]]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. 테드 카진스키의 논지가 대단히 견고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논점일탈을 통해 논의를 흐리려는 시도라는 것.] 선언문에서 언급된 [[캘리포니아 대학교/로스앤젤레스 캠퍼스|UCLA]]의 제임스 윌슨 교수는 [[더 뉴요커]] 지에서 "산업 사회와 그 미래"는 신중한 추론과 치밀한 논리로 쓰여진 논문이라고 평가했다. '''"만약 그것을 미친 사람의 작품으로 치부한다면, [[장 자크 루소]], [[토머스 페인]], [[카를 마르크스]] 같은 정치철학자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닙니다."''' The Ecologist지의 부국장 폴 킹스노스(Paul Kingsnorth)는 오리온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카진스키의 주장을 "걱정스러울 정도로 설득력 있다"며 "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"고 말했다. [[강준만]]이 펴냈던 비정기 시사인문지 <인물과 사상>[* 월간 <인물과 사상>과는 같은 강준만 계열이라는점에서 유관하나, 비정기쪽은 월간과는 별개의 간행물.]에서도 카진스키에 관한 컬럼이 투고된 바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